Page 86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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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이를 잘 이해했던 그였기에 차의 이론을 완벽한 이해한 다승이었음
을 드러낸 언구言句라 하겠다.
특히 그에게 차 생활에 영향을 미친 초의는 동철銅鐵이나 납소鑞小로 만
든 다관, 옹기 다관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일지암서책목록』에서 확인된다.
이외에도 백자 다기와 청에서 수입한 찻잔도 사용하였다. 그가 청나라 찻
잔을 사용한 것은 추사의 영향 때문이라 짐작한다.
이러한 사실은 허련의 「추사난화도秋史蘭畵圖」에는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채색 찻종으로 차를 즐긴 추사의 모습을 그려 당시 청나라 문예인과 교유
했던 추사의 일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초의와 범해의 다구의 사용
이 다른 것은 이들이 교유한 인사의 수준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이 무
렵 열악한 환경에서 차를 즐겼던 범해의 질박한 다풍은 당시의 흐름을 보
여준 것이다. 시기마다 찻그릇의 규모는 다르지만 ‘오직 차에만 힘쓸 뿐이
니惟茶是務/ 무엇이 나를 유혹하랴何物誘我’라고 했던 범해의 다풍은 선가의
담박한 풍습이 그에게 오롯이 전해졌음을 나타낸다.
그가 초의가 열반한 지 10여 년이 지난 1878년에 지은 「초의차草衣茶」는
초의가 어떻게 차를 만들었는지를 증언한 자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곡우에 穀雨初晴日
아직 황아 차 잎은 피지도 않았네 黃芽葉未開
깨끗한 솥에서 정성을 다해 덖어내 空鐺精炒出
밀실에서 잘 말리네 密室好乾來
측백나무 모나고 둥글게 찍어서 栢斗方圓印
죽순 껍질로 잘 포장했지 竹皮苞裹裁
단단히 간수하여 밖의 기운 막았으니 嚴藏防外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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