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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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어 단어 ‘by’와 ‘bye’를 살펴보자. 두세
            글자가 모여서 한 단어를 이뤘지만,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 자체에 단어의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글자 자체는 단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글

            자가 모이면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나타난다.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가 어

            떻게 연결되느냐,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가 서로 어떤 의존과 연관의 관계
            를 맺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창조적으로 발현된다. 창발이다.
              더욱이 글자 ‘e’ 하나가 있고 없음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

            다. 왜 그런가? 단어 ‘bye’에서 ‘b’와 ‘y’는 ‘e’와 연관의 관계를 맺으면서 ‘e’

            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b’와 ‘y’가 상입하면서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계
            를 맺으면 ‘by’가 되고, ‘b’와 ‘y’와 ‘e’가 상입하면서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
            계를 맺으면 ‘bye’가 된다. ‘by’와 ‘bye’에서 성립되는 연관과 의존의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글자 하나가 추가되면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이유는 ‘b’와 ‘y’와 ‘e’의 글자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입하면서
            어떤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창조적으로 발
            현되기 때문이다.

              상입과 창발은 단어가 모여서 형성되는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오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아프다.”라는 문장을 보자. 한 문장에 ‘다리’
            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면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왜 그런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앞의 ‘다리’는 ‘건

            너오다가’와 연결돼 있고, 뒤의 ‘다리’는 ‘넘어져서’와 ‘아프다’에 연결돼 있

            어서다. 앞의 ‘다리’는 ‘건너오다가’와 상입하고, 뒤의 ‘다리’는 ‘넘어져서’와
            ‘아프다’와 상입하기 때문이다. 이 상입에 의해 “건너오다가”가 침투한 ‘다
            리’는 ‘교량’이 되고, ‘넘어져서’와 ‘아프다’가 침투한 ‘다리’는 신체의 한 부분

            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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