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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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종만 놓고 보면, 신라에서는 북종선北宗禪이 먼저 들어 왔다. 북
           종선은 다양하기는 하지만 ‘관심’觀心이라는 깨달음의 체험을 중심으로 하
           는 수행법과 염불을 중시하고 ‘관심석’觀心釋이라는 경전 해석법을 견지하

           였다. 비문 등의 기록에 의하면, 법랑法朗화상이 당나라 4조 도신(道信,

           580-651)화상에게서 법을 받아 온 것으로 되어 있고, 신행(愼行, 704-779)화
           상은 북종선이 왕성할 때 당나라로 건너 가 신수(神秀, ?-706) 이후 장안

           과 낙양의 법주이고 세 황제의 국사로 선종의 중심이었던 대조선사大照
           禪師 보적(普寂, 651-739)화상의 문인인 지공(志空, ?-?)화상에게 공부를 하

           고 759년 귀국하여 단속사斷俗寺에서 법랑 선사의 맥을 이었다고 되어 있
           다. 그의 제자 준범遵範선사도 북종선을 이어 갔다. 이들은 원성왕의 손자
           인 김헌정金獻貞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으며, 신라 왕실과 상층 지배세력들

           도 그들을 적극 후원하고 따랐다.

             중국에서는 성당盛唐시기(713-770)에 북종선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중원지역을 통일하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신라에도 미쳤다. 이처럼 교종과
           북종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도의선사가 귀국하여 남종선을 말하자 ‘마귀

           의 말’[魔言]이라고 공격을 받는 지경에 처하였다. 그리하여 가지산문迦智山

           門의 개산조開山祖라고 말해지는 그도 변방에 은거하게 되었고, 설악산 억
           성사億聖寺에서 그에게서 법을 전수받은 염거(廉居, ?-844) 선사도 조용히 수
           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제자 보조체징(普照體澄, 804-880) 선사에 와서 비

           로소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에서 가지산문을 개창하기에 이른다.

             한국 불교사를 보면, 이러한 선승들이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형성한 산문을 흔히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고 한다. 그 형성 시기와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형편이지만, 대체로 9개의 산문은,

           ① 당나라 서당지장에게서 법을 전수 받은 도의선사가 귀국하여 진전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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