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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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창한 봉림산문鳳林山門을 말한다.
이는 모두 선종이지만 선사들의 개성과 그 제자들의 가풍에 따라 가르
침과 정치적 행적에서는 차이가 있었고, 당시 밀착하거나 관계한 신라 왕
실의 세력 그리고 신라말기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고려 왕실과의 관계에 따
라 성쇠盛衰와 성격에서 차이가 있었다. 도의, 혜철, 현욱, 도윤, 무염, 이엄
이외에 앙산혜적(仰山慧寂, 814-890)의 제자인 순지(順之, ?-? 도당 유학: 858년
경) 화상과 소산광인(疎山匡人, 837-909)의 제자인 경보화상 등은 당시 중국
에서 모두 마조선사의 제자들에 의해 ‘마조선’ 또는 ‘홍주종’洪州宗이 불교
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공부하고 왔기 때문에 당연히 신라에도 마조선
의 종풍을 펼쳐나갔다. 당시 일본에서도 도당구법승이나 직접 일본으로 건
너간 당 나라 선사들이 이런 선풍을 펼쳐 나갔다. 이 시절에는 조사祖師들
이 곧 부처로 간주되었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경전의 반열에 올려놓아 이
를 간행하고 유포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나는 여기서 도대체 마조선이 무엇이기에 당시 신라, 일본 등 동아시아 국
가들에까지 그 바람이 이렇게 강하게 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중
국에서는 경전의 번역을 통하여 고차원적인 불교철학이 전파되어 중국불교
의 기반을 구축했고, 기라성 같은 뛰어난 승려들이 앞 다투어 연구하여 교
학을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교학이 성당시대 이후 정치적
불안 상황과 맞물리면서 왕실과 귀족, 지식층 중심의 불교에 대한 비판이
생겨나고, 부처 되는 길이 어려운 경전 공부와 수행을 통하여 도달되는 것
이 아니라 경전을 이해하지 않아도 마음을 직관하는 수행과 염불만 해도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에 변방의 호족들이나 절도사들
이 적극 호응하였다. 그들은 중앙에 대항하는 세력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런 사상을 받아들였고 이는 이해하기도 쉬운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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