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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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1940), 경학원(명륜학원) 강사(1913-1945), 일본 천리대天理大 교수(1945년
이후) 등 학계에 근무하며 조선인과 조선역사에 대해 주로 부정적 편견을
덧씌웠던 다카하시는 한국학을 연구하거나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일본학자이자, 특히 ‘조선의 불교’와 ‘조선의 유학’이 논의될 때마다 거론되
는 인물이기도 하다. 식민사관을 불교에 적용한
『이조불교李朝佛敎』(1929년, 사진 3) 등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오대산 영감암靈鑑庵에 있었던 사고史庫를 조
사하다 찾은 월정사와 상원사에서 “탈속적脫俗
的이고 정경靜境에 있는 느낌을 받은” 다카하시
5)
는 “조선불교에 대한 종래의 관념에 일대 변화
를 일으켜,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흥
했으며,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해명하고자 조선
6)
불교사 연구에 착수”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조
사진 3. 『이조불교』.
민속원 영인본, 2002. 선불교를 지극히 타율적이고, 지독히 정체적停滯
的인 사상으로 파악했다.
“조선인은 사상상思想上 특성으로 현저한 고착성固着性과 비非독
립성獨立性을 갖고 있다. 고착성이란 한 번 어떤 사상을 수용하
고 자신의 사상으로 터득한 뒤에는 어떠한 새로운 다른 사상을
접해도 결코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옛날의 사상에 붙어 있는
5) 『李朝佛敎』, p.11(緖言).
6) 『李朝佛敎』, p.11(緖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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