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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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조선학자로서는 파천황의 사업을 이루었다. 그러나 주된 목적은 재료의
           수집에 있고, 연구와 비판을 두 번째에 두었다.”  그래서일까? 『이조불교』
                                                    12)
           처럼 전체적인 안목을 갖고 사료들을 정리·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조선시대

           불교를 조명한 연구서는 다카하시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연구의 틀’을 만들어 적용했다는 이 점
                              때문에 1세대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기간 한반도를 식

                              민통치 했지만 일제日帝의 기제機制가 지금도 주변에

                              맴도는 듯이 보이는 지도 모른다. 사실 일제가 36년
                              동안 한반도에 이식하고자 한 것은 일본어와 일본
                              문화만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완전한 지배와 영원

                              한 동화同化를 지향했던 일제의 조선식민통치는 일

                              본식으로 변형된 법령과 각종 제도를 통해 이뤄졌
                              다. 일제가 반포한 법령 가운데 조선의 전통사회와
                              문화에 가장 포괄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912년 3

                                                                13)
           사진 7. 권상로 지음, 『조선불교  월 공포된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이었다.  민법, 상
           약사』, 신문관, 1917.
                              법, 민사소송법 등 당시 일본에서 시행되던 법률들
                              이 조선에도 적용됐다. 민사령 시행 전후로 일제日
           帝는 화폐, 금융, 재정, 등기登記 등의 제도를 체계화했다. 총독부가 반포한

           법령에 따라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됐다. ‘사적 개인’과 이를 토대로 한 가

           족이 형성되고 나아가 공장, 회사, 보험 등의 시장기구와 철도·도로 등 사




           12) 『李朝佛敎』, p.24(緖言). 『조선불교통사』에 대한 다카하시의 평가가 반드시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13) 이영훈 지음, 『한국경제사Ⅱ-근대의 이식과 전통의 탈바꿈』, 서울: 일조각, 2016,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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