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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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이외의 크나큰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조선사상의 특성을 비非독립성과 고착성으로 정리·파악해 외세가 조선
을 통치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음을 논증하고, 학문적 목적만이 아니고 일
제의 식민통치에 일조一助하고자 조선불교를 연구하는 것임을 숨김없이 밝
히고 있다. 다카하시가 일제의 불교정책을 적극적
으로 옹호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하겠다.
[1] “총독부는 일찍이 조선불교 보존의 계획
을 정定하고, 메이지 46년(1911) 6월 사찰령을
반포하여 모든 사찰의 재산권을 확실하게 인
정하고, 30본산을 정해 그 주지의 취임은 총
독의 허가를 받아야 되고, 모든 사찰을 30본
산에 나누어 소속시키며, 또한 출가자의 포
교를 인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조선불교는
부활의 운명을 향해 승려는 우리의 시대가
사진 5. 김용태 지음,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왔다고 생각하며 분발하여 포교와 공부하는
신구문화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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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종사했다.”
반포이후 거의 1세기 동안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색된 다양한 이름과 내
용으로 한국불교를 옭죄었던 사찰령을 다카하시는 “조선불교 보존 계획의
8) 『李朝佛敎』, p.23(緖言).
9) 『李朝佛敎』, p.19(緖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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