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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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이 목각탱을 부
석사를 제외한 주위의
양해를 얻어 1869년에
대승사로 모셔 갔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대승
사의 입장이다(사진 9).
이때 부석사는 자신
의 성보를 대승사에 내
주는 것을 내켜하지 않
았는데, 결국 여차저차
해서 목각탱을 넘겨주게
사진 10. ‘강당’명 탁본(미디어붓다).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를 되찾아오기 위해 대승사와 송사를 벌이게 된다. 이때의 과정은 대략 문
서로 지금까지 남아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를 통해 추정해 보건
데 부석사는 힘없이 자신의 성보를 내주어야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던 것
으로 보인다. 이 문서에는 목각탱을 운반해가면서 불상도 3위나 훼손됐다
고 적혀 있어 목각탱이 있던 건물은 아미타불만 혼자 있는 무량수전이 아
닌 것이 분명하다.
이후로 강당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무량수전 뒤편 어디에선가 수
습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추론은 이제 정설이 되어서 문화유산해설사들도
이제 무량수전을 강당이라고 설명해야하지 않을까 싶다(사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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