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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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識陰까지 탕진무여蕩盡無餘하여 오르고 오매일여의 참다운 경지가
여래지에 직입直入하지 않으면 내외 나타나지만 미세한 번뇌인 아뢰야
명철하여 여정유리함보월如淨瑠璃含 식까지 완전히 없앤 여래의 경지에
寶月한 구경무념은 성취하지 못한다. 곧바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팎이 환
한 것이 마치 투명한 유리 속에 보
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 같은 ‘궁
극의 그릇된 생각 없는 경지[究竟無
念]’는 성취되지 않는다.
【강설】 한 번 훌쩍 뛰어 곧장 여래지에 들어가 구경각을 완전히 성취하면
이것이 견성이고, 견성하면 맑은 유리 속에 보배 달을 품은 듯 내외명철하
게 된다. 유리병 속에 촛불만 밝혀도 온 방이 환한데 거기에 보름달을 갖
다 놓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 밝음이 시방법계를 비추고도 남을 것이다. 이
처럼 내외가 명철하기 전에는 아무리 크게 깨치고 크게 알았다고 해도 그
것은 공부하다 병이 생긴 것이지 견성도 돈오도 아니다. 따라서 10지·등
각이라 해도 견성한 사람은 아니다. 운문 스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는
가? “10지의 대성인이 설법은 구름이 일듯 비가 오듯 자유자재하게 하여
도 견성은 하지 못했다.” 또한 선교를 통틀어 대종사로 추앙받는 마명 보
살 역시 보살지가 다해 미세망상을 영원히 끊어야 견성이라고 하였다. 그
러니 부처님과 조사 스님의 말씀을 불문하고 구경각을 성취해야만 견성이
지 그러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불교의 철칙이라 하겠다. 만
일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주장을 편다면 그런 이설은 불교가 아니
고 그런 사람은 불제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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