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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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구지가 칼로 잘
             라 버렸다. 동자가 울면서 달아나자 구지가 불
             렀다. “무엇이 깨달음이냐?” 동자가 무심결에

             손가락을 세웠지만 손가락이 없었다. 그 때 동

             자가 몰록 깨쳤다. 손가락을 잘라 진리를 깨닫
             도록  했다[절지오도切指悟道].  폭력적이나  효과
             는 확실하다.                                     사진 1. 홍사성 시인.

               다른 하나는 육긍 대부를 놀라게 한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의 방법

             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제10 「육긍陸亘 대부大夫」조에 있는 문답이
             다. 육긍이 남전에게 물었다. “병甁 속에 한 마리 거위가 있습니다. 거위가
             자라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위를 죽여서도 안 되고, 병을 부셔도 안

             됩니다. 어떻게 나오게 합니까?” 남전이 갑자기 “대부!” 하고 고함질렀다.

             육긍이 놀라 “예!” 하고 엉겁결에 대답했다. “나왔네.” 하고 남전이 말했다.
             육긍은 이후 무엇에도 걸리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 병에서 나오게 했다[환
             명출병喚名出甁]. 고함쳐도 거칠지는 않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 통과해도 다시 세 관문을 돌파해야 된다. ‘절지

             오도’나 ‘환명출병’조차 초월하기 위해서다. 무엇이 세 관문인가? 동정일
             여動靜一如의 초관初關, 몽중일여夢中一如의 중관重關, 숙면일여熟眠一如의
             뇌관牢關이 그것이다. 세 관문을 뚫은 삶은 이치에 맞고 자유롭다. 초관에

             서 ‘범부’는 ‘성인’으로 변한다. ‘종범입성從凡入聖’이다. 중관에서 ‘성인’이 ‘범

             부’로 돌아간다. ‘종성입범從聖入凡’이다. 중관의 범부는 초관의 범부가 아니
             다. 뇌관은 범부와 성인에 구애되지 않고 벗어난 경계다. ‘범성구불립凡聖
             俱不立’이다. ‘범부가 변한 성인[초관]’이나 ‘성인을 겪은 범부[중관]’는 여전히

             범부와 성인에 묶여 있다. 미망[迷]과 깨침[悟]의 경계인 뇌관을 넘어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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