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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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모아 나열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인
                                     횟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고구려선교시
                                     말」은 12건으로 원전原典보다 많이 수록

                                     되었다. 다산은 고구려의 불교기사가 고

                                     구려본기에 수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백
                                     제본기나 신라의 김유신·거칠부 열전에
                                     서 발췌하여 「고구려선교시말」에 수록했

                                     다. 「백제선교시말」 또한 전체 10건에 불
          사진 1. 최남선의 『대동선교고』 해제.
                                     과하며, 보조 자료도 최치원이 찬한 지증
          대사비문智證大師碑文을 1회 정도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삼국의
          선교시말은 그 인용횟수에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삼국사기』

          원전의 내용이 신라불교사 중심의 편향성이 그 일차적인 원인이다. 다산

          또한 『대동선교고』 전반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동선교고』는  이외에도  『불조통재佛祖通載』·『전등록傳燈錄』·『염송집拈頌
          集』·『사산비명四山碑銘』·『불조원류佛祖源流』 등을 자료로 활용했다.

           다산의 고대불교사 정리 작업은 단순한 자료정리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
          다. 조선후기의 시대 상황과 문화의식이 반영되었다. 조선의 17세기에서 19

          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국가적 위난危難과 급격한 변동의 시기다. 사회변동
          에 수반한 문화변동이 폭넓게 진행되기도 했다. 사상계思想界는 성리학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시대적인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

          응하지 못하였고, 양명학陽明學이나 선진유학先秦儒學과 외래문물에 자극
          받은 실학사상 등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아울러 불교에 대한 재인식과 천
          주교의 수용과 같은 탈脫성리학적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사조는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주자학적 사회규범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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