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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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이것은 다산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체계이기도 했던 영토의식이
불교사 편찬에도 작용한 것이다. 다산은 『대동선교고』 후반부의 『경덕전등
록景德傳燈錄』에 수록된 신라 스님들을 소개할 때는 구체적으로 그 권수까
지 표기했고, 동일 인물은 『경덕전등록』과 『불조원류』를 비교 검토하는 세
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의 『경덕전등록』에 수록된 신라 순지 선사順支
禪師에 대해서는 스승 앙산적 선사仰山寂禪師와의 선문답禪問答을 소개하
고, 채영이 찬한 『불조원류』에는 ‘오대산순지선사五臺山順支禪師’로 표기되었
음을 밝혔다. 아울러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원상圓相에 대해서는 “만법萬
法이 귀일歸一하다는 뜻 같다”고 선문답을 해석까지 하고 있다.
그는 『불조원류』에 수록된 ‘신라명덕新羅名德’을 참고할 인물이나 ‘흔적을
‘
살필 수 있는자’·흔적이 끊어져 살필 수 없는자’로 분류하여 정리하기도 했
다. 그는 조선후기에 간행된 『불조원류』가 신라의 명덕名德에 대한 사실을
잘못 기록하여 믿기 어렵다고 했지만, 참고하도록 덧붙여 둔다고 전제했으
며, 흔적이 끊기고 없는 사람은 명자名字라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이 알
아보게 할 만큼 인용 자료의 비교검토와 후대의 연구를 염두에 둘 만큼 치
밀함을 보였다.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결국 다산은 『삼국사기』의 단편적인 불교기사를 통해 한국 고대불교사
의 개요를 소개했고, 『불조원류』나 사산비명과 같은 자료를 통해 불교계 내
부와 승려의 법맥과 수행 등 『삼국사기』가 지닌 한계를 보충하고자 했다.
다산은 『삼국사기』와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를 불신했던 상황에서 단편적인
불교기사를 한 곳에 모아 우리나라 고대불교사를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지
니고 있었다. 때문에 『대동선교고』는 불교사에 대한 단순한 자료집이기 보
다는 문화전통을 중심으로 한 자국사의 주체적 체계화 작업을 위한 불교
사 편찬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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