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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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이론적·추상적·비현실적인 학풍
에 대하여 반성과 비판을 통해 부상하였
다. 이들은 정치적·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함께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강화시키고 있었다. 실학자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재인식은 제한적이었지
만, 그동안 이단異端으로 여겨 왔던 불교
에 대한 이해와 불교사 편찬으로 이어지
기도 했다. 사진 2. 『대동선교고』.
정약용의 『대동선교고』는 불교가 탄압
받는 시대적 상황에서 실학자가 찬술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역사적 의미
를 담고 있다. 더욱이 그는 불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유학자였지만, 우리나
라 불교사를 소개하는 단순한 동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불교사를 체계화시
키고자 했으며, 그 정리를 통해 조선 문화사의 자주적 이해를 확대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의 불교사 찬술은 한국문화사 이해의 성과뿐만 아니
라 당시 불교계의 사지寺誌·승전僧傳과 같은 불교계의 저술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시기 스님들의 조선불교사에 대한 적극적 이해나
철저한 고증을 기초로 한 편찬방식은 왜란과 호란 직후 편찬된 사지寺誌의
부실함을 비판하고 극복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았다. 다산의 영향은 이와
같이 지대한 것이었다.
한편 다산은 불교전래를 종교적 측면이 아닌 역사적 측면에서 해석하고
자 했다. 즉 조선과 중국관계를 기초로 한 역사적 측면에서 그 전래를 해
석했고, 특히 백제의 불법이 침류왕 때 동진東晋으로부터 전래되었지만, 한
강 이북이 타국의 영역였던 탓에 사찰을 널리 창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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