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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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적광전과 금당탑.
상 등을 설파하며 나라의 중심적 승려로 활약하였다.
602년에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阿莫城을 쳐들어온 전쟁에서는 원광 법사
에게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받은 화랑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장렬히 전사
하였다. 아막성은 오늘날 남원시 동쪽에 있는 ‘할미성’으로 추정되는 곳이
다. 바로 이해에 고승 지명화상이 진나라로 들어간 입조사入朝使 상군上軍을
따라 귀국하였는데 진평왕이 화상의 계행戒行을 존경하여 대덕大德으로 삼
았다. 608년에는 급기야 원광 법사가 ‘걸사표乞師表’를 지어 611년에 사신이
이를 가지고 수나라로 들어가 양제煬帝에게 올려 그로 하여금 군사를 움직
이게 하였다. 진평왕 당시에 원광 법사가 나라의 중심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었고, 605년에 입조사 혜문惠文을 따라 귀국한 담육 화상은 지명 화상과
비견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이때는 아직 원효(元
曉, 617-686) 대사와 의상(義湘, 625-702) 대사가 태어나기 전이다.
당시 신라는 진흥왕 때 이사부(異斯夫, ?-?)와 거칠부(居柒夫, ?-579), 사다
함(斯多含, ?-?) 등의 활약으로 지금의 함경도 마운령과 황초령, 북한산, 창
녕 지역까지 영토를 최대로 넓히고 성도 굳건히 쌓기도 하였지만,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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