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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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치를 망각하고 교만하게 구는 것에 대해 『성유식론』에서는 ‘취
             방醉傲’이라고 표현했다.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지혜의 안목이 아니라
             부질없이 ‘헛것에 취하여 방자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자

             함에서 갖가지 번뇌와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번뇌가 된다. “방자함에

             취한 사람[憍醉者]은 모든 잡염법을 일으키고 증장한다[生長一切雜染法].”고
             했다. 남들보다 좀 낫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을 자신의 실체적 특성으로 착
             각하여 나르시스처럼 그런 것에 도취되어 방자하게 행동하면 그로부터 온

             갖 번뇌 망상에 물들게 되고, 자신의 허물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만은 주로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타인의 번뇌를 일으키
             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갑질과 같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군림하
             며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만은 종

             국에는 자신에게도 번뇌가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 첫째는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자신의 교만심 때문에 스스로
             멸시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생각 때문에 화가 치밀고 스스로 괴로
             워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조건을 기준으로 잘났다고 뻐기는 사람은 자신

             보다 잘난 사람 앞에 서면 자신이 세운 그 기준 때문에 스스로 주눅이 들

             고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교만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동시
             에 자기 자신에게도 커다란 번뇌가 된다.
               아첨과 교만은 서로 반대되는 심소 같지만 그 속성을 보면 모두 겸손과 관

             련 있다. 겸손은 어느 종교에서나 강조하는 덕목이다. 자성을 바로 보아 ‘스스

             로 구원하라[自度]’고 가르치는 혜능 대사도 ‘항상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라’는
             뜻에서 ‘상행하심常行下心’을 강조했다. 교만하지 말라고 해서 스스로를 부정하
             고 염세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여유 있고, 겸손하려면 스

             스로 내적 자긍심이 깊어야 비로소 당당하고 겸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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