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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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이나 약점을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굽신거린다면 아첨이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라면 그것은 아첨이 아니라 겸손이고 인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만에 담긴 두 가지 번뇌
‘교(憍, mada)’ 심소는 ‘교만’ 또는 ‘방자함’을 뜻한다. 타고난 인종, 혈통,
외모, 지위, 학벌, 가문 등 남들보다 우월한 조건을 근거로 타인에게 우쭐
대며 특별하게 대접받으려는 것이 교만이다. 따라서 교만 역시 탐貪 심소
의 일부분으로 분류하고 있다.
『성유식론』에서는 교만에 대해 “자신의 우월한 일에 대해[於自盛事] 깊이
탐착하는 마음을 일으켜[深生染著] 그것에 취한 방자함이 본성이다[醉傲為
性].”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자신의 ‘우월한 일[盛事]’은 여러 가지 범주가 있
을 수 있다. 인종적으로 백인이 유색인종에 대해 갖는 우월감도 교만이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우쭐대거나 갑질 하는 것도 교만이고,
부자가 자신의 경제적 힘을 믿고 거드름 피우는 것도 교만이고, 학벌 좋은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멸시하는 것도 교만이고,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우쭐대는 것도 교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탁월하게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육신은 풀잎에 맺힌 이슬
처럼 부질없는 것이다. 내 삶의 근간이 되는 육신조차 부질없는데 하물며
자신이 소유한 조건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의 삶에
서 현상적 문제들은 실체가 없는 공空한 것들이며 본질적인 것들이 아니
다. 그런데 그것을 실체로 받아들이고 집착하게 되면 그런 것들을 믿게 되
고, 여기서 교만이라는 왜곡된 말과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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