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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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습니다. 직유나 은유의 도
움 없이도 모란에 대한 기다
림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게 하는군요. 화려한 모란의
낙화를 통해 ‘설움’을 표출하
면서도 ‘찬란한 슬픔’의 개화
를 기다리는 시인이 자못 아
름답습니다. 모란에 대한 가
장 심원한 메시지는 1,200년
전 중국 안휘성 남전산 산속
에서 나왔습니다. 남전 선사
사진 2. 모란꽃.
가 찾아온 육긍 대부와 문답
을 하는 가운데 뜨락에 핀 모란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 요즘 사람들은 이 꽃을 보더라도 꿈속에서처럼 희미하게 밖
에 못 본다네.”
5)
범부라 하더라도 이 한 말씀을 듣고 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꿈에서 깨어
나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더 생생하고 아름다울까요. 비록 전해 듣는 말이라
할지라도 이런 말을 알게 되면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전
선사의 말씀을 생각하며 모란꽃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전체 풍경이 확 달라
지면서 참으로 생명이 세탁되는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을 받습니다.
5) 『從容錄』第九 「十一則」: “南泉牡丹. 泉庭前牡丹指云: ‘大夫! 時人, 此一株花見夢如相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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