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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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을 강조한 듯하다. 여기에는 왜란과 호한 이후 변화한 자아의식과 조
          선사에 대한 자주적 인식 또한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해안의 사적기는 이러한 불교계의 주체성 확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

          다. 해안은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다시 조선으로

          전래된 사실을 정리하였다. 이것은 조선의 불교가 인도나 중국불교와 대등
          하게 발전하였음을 표방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정통성과 함께 독자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었다. 해안이 조선 고대불교의 승전僧傳을 수록한 것 역

          시 조선불교의 역사와 자긍심 고취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 해안은 사찰의

          역사와 인물, 그리고 그 문화를 당은 사적기를 통해 조선불교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표방하고자 했다.
           한편 해안의 사적기는 전란 이후 찬술된 사적기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초기에 해당되며, 그 내용 또한 조선 후기 불교계의 동향을 반영하고 있다.

          17세기 불교계는 전란으로 불타버린 사찰을 복구하는데 진력했다. 사찰 사
          적기 또한 이후 전개되는 각종 사원의 복원불사와 함께 사찰의 연혁과 전
          각, 고승의 행적, 사원경제 등 사원의 역사와 당시의 현황을 정리하려는 목

          적으로 찬술되었다. 사찰에 관한 사적기는 이전부터 찬술되었지만, 임란 이

          후 망실된 사원의 복원과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석존의 생
          애, 불교의 중국전래, 고대 조선의 불교전래와 홍포 등을 수록하여 조선불
          교사 인식의 범주까지 확대시켰다.

           마지막으로 해안의 사적기는 이후 찬술된 불교역사서에 많은 영향을 주

          었다. 『대둔사사적』은 비록 18세기 후반 다산 정약용과 그 영향을 받은 대
          둔사 승려들이 『대둔사지大芚寺志』를 찬술할 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들
          역시 해안의 『대둔사사적』을 저본으로 이용했다. 전란 이후 관련 전적이 거

          의 전무한 상황에서 그의 사적기는 훌륭한 참고자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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