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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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 40년 대사 해안이 범종각·좌경루·우경루·남행랑을 중건하
                  였다[萬曆四十年, 大師海眼重建, 梵鍾閣·左經樓·右經樓·南行廊].”



               광해군 4년인 1612년 중관 해안中觀海眼이 전란의 참화가 극심했던 경주

             불국사의 범종각梵鍾閣·좌경루左經樓·우경루右經樓 그리고 남행랑南行廊을
             중건했다는 기록이다. 해안이 당시 경주에 있었다는 것은 「연곡사燕谷寺의
             모임이라는 시」에 나오는 “계림雞林의 선원禪苑에 있었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아울러 남공철南公轍이 지은 「사명대사기적비명四溟大師紀蹟碑銘」에

             해안이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조직하여 활동하며 불국
             사에 주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 이때 『불국사고금창기』의 기초가 된
             『불국사사적기』를 찬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안이 임란 이후까지 경

             주 불국사에 주석하며 전란으로 소실되어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불국사를

             중창하기 위해 진력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수행자였지만, 왜적
             방어에 진력했고 수행과 사원의 중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의 문집에 “몸은 산림山林에 있으며 이름

             은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에까지 퍼져 임진년(壬

             辰年, 1592)에서 정축년(丁丑年, 1637)까지 승려의
             장의총통승군仗義摠統僧軍으로 있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의 삶의

             대부분이 전란과 함께 했다는 것을 이 구절에

             서 짐작할 수 있다. 해안은 당시 조선의 어지러
             운 상황과 전란 속에서 의승군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조선불교계가 안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

             을 뿐만 아니라 전란으로 폐허가 된 불교유산                    사진 1. 『불국사고금창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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