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P. 124
(nimitta)은 ‘지각과 경험 발생의 초기조건인 차이 현상’으로서 이때 ‘차이’란 ‘구
분되는 특징적 차이’를 의미한다. 대승교학과 원효의 언어에서 등장하는 ‘상相’
이라는 용어들 가운데서도 ‘지각과 경험 발생의 초기조건인 차이 현상’을 지시하
는 용법이 많다. 이러한 경우의 상相을 ‘차이’라고 번역하여 관련 문장이나 이론
의 의미를 탐구하면, 지금까지 놓쳐왔던 붓다 법설과 대승교학의 의미를 발굴해
낼 수 있다. 특히 붓다와 원효의 언어에는 이런 측면이 두드러진다. 성철의 중도
관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혜안의 범주 내에서도 초점을 이동하면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 붓다 법
설과 대승교학, 원효와 성철의 혜안에 담겨 있지만 간과되어왔던 통찰과 문제해
결력도 마찬가지이다. ‘중도는 양변인 유‧무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말의 의미
를 오직 ‘유‧무’라는 개념으로만 읽는다면, 철학적 타당성은 유지되어도 현실문
제 해결력은 자칫 공허할 수 있다. 철학적 고담준론에 머물러 중도가 지닌 문제
해결력이 증발할 수 있다. 유교 전통에서, 성리학을 현실문제 해결에 무기력한
관념적 고담준론이라 비판하면서 생활세계 문제해결력에 힘을 싣는 실학이 등
장한 교훈은, 불교의 교학적 담론에도 유효하다.
성철과 원효는 중도를 각자의 방식대로 거론한다. 논의의 방식은 차이가 있어
도 중도에 대한 두 사람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두 사람 모두 중도가 모
든 불교 교학을 관통하고 있다고 보는 점에서도 그 안목이 일치한다. 그런데 성
철은, 유‧무 양변을 벗어나는 중도의 특징이 ‘쌍차雙遮와 쌍조雙照를 동시에 드
러내는 차조동시遮照同時‧쌍민쌍존雙泯雙存의 진공묘유眞空妙有’에 있다고 보는
중도관으로 근본불교와 선종까지의 모든 불교를 하나로 꿰는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중도를 깨달아 증득하는 수행법으로 화두선을 부각시킨다. 이에 비해 원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