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P. 119

치 신비주의가 설정하는 ‘불변‧동일의 궁극실재를 체득한 경지’로 간주하여 성
             철의 오매일여 주장을 비난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고 비생산적이다. 수행

             맥락에서 말하는 ‘일여一如’는 ‘고도화된 지속성’이다. 어떤 국면을 지속적으로
             유지해갈 수 있는 것은 ‘변화 속에서 가능한 현상’이다. 변화(無常)라는 현실적‧

             경험적 현상과 함께 양립할 수 있는 것이 ‘지속성’이다. 특정한 인과관계로 결집
             된 특정한 패턴의 지속성은 변화하는 현상의 또 다른 면모이다. 개인에게서 목격

             되는 신체와 정신의 고유한 정체성도 ‘변화 속에서 지속되는 일정한 인과관계의
             고유한 패턴’이다. ‘변화와 양립하는 지속성’은 ‘동일한 본질/실체의 불변성’과

             는 구별해야 한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유형과 수준의 집중 현상은 ‘변화 속
             에서의 지속’이 가능하다는 증거이다.

               <돈오 국면의 지속적 유지, 화두 챙기는 국면의 지속적 간수가 과연 잠잘 때도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부처님은 연기‧중도‧무아의

             깨달음을 어느 정도 지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수행과 깨달음의 일상성에 무게를 두는 시선이라면 <잠들지 않고 깨어있

             을 때 잘 지속시키면 될 뿐>이라고 하겠고, 수행과 깨달음의 궁극성에 무게를 두
             는 시선이라면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나 지속시키는 경지>에까지 시선을 향할

             것이다. 성철은 <수행과 깨달음의 궁극성을 선택한 경우>이다. 성철이 그러한 궁
             극성을 성취했는지는 성철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성취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는 초인적 수행, 오매일여의 궁극적 성취를 입증할 수 있는 선가의 사례
             들로서 그가 채집한 사례들을 단서도 삼아 각자 판단할 문제이다. 성철의 ‘오매

             일여’에, 선가가 시설한 ‘언어 관문’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경험적 관문’이라
             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매일여 주장이 지니는 ‘수행 현장의 문제해결력’을

             드러낼 수 있다.
               ‘수행과 깨달음의 일상성과 궁극성’ 문제를 성찰적 논란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119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123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