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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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중도中道‧연기緣起‧무아無我‧사성제四聖諦‧팔정도八正道 등이 그 대표적
매듭들인데, 특히 중도는 연기와 더불어 붓다 법설을 포괄적으로 관통하는 최상
위 원리로 보인다.
다양한 유형의 법설들을 발산‧수렴해 내는 상위원리로서의 매듭들은 붓다
법설에 대한 후학들의 이해가 붓다의 의중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판별하는 해
석학적 감별지鑑別紙이다. 이들 매듭과의 연결을 확보하고 있으면 ‘불교적 정체
성을 확보하는 이해와 이론’이 되고 연결이 끊기면 ‘불교적 정체성을 상실한 이
해와 이론’이 된다. 중도와 연기라는 매듭은 가장 확실한 감별지이다.
백일법문에서 펼쳐지는 퇴옹성철(1912-1993, 이하 성철)의 혜안은 이 점을 정확
하게 밝혀주고 있다. 중도와 연기를 근본/상위 원리로 포착한 후 이에 관한 근본
불교적 내용을 니까야‧아함의 문헌에 의거하여 확인하는 동시에, 주요 대승경
론과 선종의 문헌들을 망라해 가면서 중도‧연기의 원리가 대승불교와 선종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백일법문의 일관된 취지이자 목적이다. 성철
이 백일법문에서 드러내는 중도·연기에 대한 통찰과 혜안, 근본불교와 대승 및
선종을 중도‧연기의 도리로 꿰어 내려는 광대한 기획과 전망, 그 기획과 전망을
관철해 내는 탁월한 내공을 보면서, 필자는 문득 원효(617-686)의 체취를 맡는다.
대승과 비非대승 문헌 및 교학을 망라하여 능동적 태도로 철저히 탐구하면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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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차이들을 한 줄로 엮어내는 통섭通攝 이론체계를 수립하려는 원효의 원
1) 학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통섭統攝’이라는 개념은 원효가 구사하는 ‘통섭通攝’이라는 개념과는 한자어도 다르고
그 함의도 다르다. 모든 내용을 통합적으로 결합시키려는 발상인 ‘통섭統攝’과는 달리, 원효의 ‘통섭通攝’은 동일
성이라는 환각 때문에 배타적으로 격리되어 상호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차이들로 하여금 ‘상호 개방되어 상호
작용하면서 호혜적 자리를 마련해 가게 하는 통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효의 화쟁和諍은 통섭通攝과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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