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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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못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는 공간적인 상호 의존과
             연관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 시간적 인과가 더해지면 환원주의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시간의 연기緣起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선 숨을 쉬어야 한다.
             산소 호흡을 못 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의존
             적이고 연기적인 존재임을 말한다. 그런데,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산

             소가 원시지구에는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 주변의 산소는 필연적으

             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건 38억 년 동안
             지구 생명이 만들어 낸 것이다. 산소가 풍부해지면서 산소 호흡을 하는 생
             명체가 진화의 역사에 등장했다. 우리는 그 후손이다. 그러므로 지구에 산

             소가 풍부하게 존재하고 우리가 산소 호흡을 한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의 의존과 연관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일 뿐 아니라, 각각의 부분은 원래 그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역사적 존재다. 생명과 지구의 진화를

             통해 과거의 모든 순간이 현재에 와 닿아 있고, 현재는 미래의 모든 순간

             에 연결돼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기緣起한다.
               화엄종 3조 법장 스님은 “십세十世는 따로 다름을 구족하면서도 동시에

             현현하며 연기를 이루어 상입相入할 수 있으므로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
             異成門이 성립한다.”고 하셨고 , 의상 스님은 「법성게」에서 “구세십세호상
                                      1)
             즉九世十世互相即”이라고 하셨다.




             1)  과거, 현재, 미래의 각각에 다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이 구세九世가 상즉相卽하여
               총체를 이룬다. 이 총체와 구세九世의 각각을 합쳐 십세十世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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