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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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왕사 토굴의 옛터에 무학 대사無學大師의 조그마한 초상이 있는
데, 승려들이 모두 말하기를 휴정과 유정은 임진왜란 때의 전공으
로 모두 사당을 세우고 사액賜額하였는데, 무학 대사는 곧 개국원
훈開國元勳인데도 전적으로 봉향奉享하는 곳이 없으니, 돌아가면 임
금께 아뢰어 조그마한 초상을 모사하여 토굴에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청컨대 소원대로
허락하소서. 하니, 따랐다. 인하여 명하기를, “사액하는 일은 밀양
의 표충사와 해남의 대둔사의 전례에 따르고, 대사의 호 또한 두
절의 전례를 적용하여 액額은 석왕이라 하고 대사의 호는 ‘개종입
교보조법안광제공덕익명흥운대법사開宗立敎普照法眼廣濟功德翊命興
運大法師’라고 하라.”
『정조실록』에 수록된 내용이다. 정조는 사액을 내리기 전에 이미 석왕사
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위 14년에는 석왕사에 비석을 세울 것을 명했
고 다음 해에는 직접 비문을 써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관심은 동년 5월
“석왕사는 왕업王業이 일어난 곳이므로 다른 곳에 비해 소중하기가 각별하
다.”고 한 그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다. 급기야 호조판서 서호수徐浩修의 청
으로 사액을 내렸다. 대흥사에 ‘표충表忠’, 묘향산에 ‘수충酬忠’이라는 사액
을 내린 일 역시 임진왜란 당시 청허 휴정과 승군의 전공戰功에 기인한 것
이었다. 이밖에 정조는 이미 퇴락한 장안사長安寺를 중수하여 다시 스님들
이 머물게 해주었다. 요컨대 정조가 석왕사에 비를 세우고 대흥사와 표충
사에 사액을 내린 것은 이전 시기부터 불교와 스님들이 왕조의 개창과 위
기상황에서 왕조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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