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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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모습이어서 운상선원으로 이름 지었지만, 이곳을 신라의 옥보고玉
          寶高의 전설이 있다고 하여 옥보대玉寶臺라고 불리기도 했다(사진 8).
           칠불사의 대웅전 문수전 등 당우들의 현판과 주련은 서예가 여초如初 김

          응현金膺顯(1927-2007) 선생이 썼다. 칠불사로 들어오는 입구에 서 있는 일주

          문에는 ‘지리산칠불사智異山七佛寺’라는 쓴 큰 현판이 걸려 있다. 통광 대선
          사의 글씨다. 선사는 이 글씨를 남겨 놓고 아자방에서 입적했다.
           칠불사는 서산 대사 휴정休靜(1520-1604)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서산

          대사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선백인 부용芙蓉 영관靈觀(1485-1571) 선사에게

          배우다가 출가하여 30세에 명종이 보우 화상의 청에 따라 선교양종을 복구
          하여 승과를 부활할 때 제1회 시험에서 최상급으로 합격하여 그 후 승직의
          최고인 판선종사判禪宗事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37세에 이러한 직이 선승의

          본분이 아님을 깨닫고 그 직을 반납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반년을 수행한

          후 지리산으로 와서 6년간 정진하였다. 이때 칠불사 원통암圓通庵과 칠불사
          아래에 있는 내은적암內隱寂庵에도 주석했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는

          내은적암에서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저술했다. 1589년 정여립鄭
          汝立(1546-1589) 사건 때에는 서산 대사를 모함한 인간들도 있었으나 오히려

          선조가 그 높은 인품을 확인하고 묵죽도墨竹圖를 그리고 시를 써 하사했다.


              葉自豪端出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根非地面生 뿌리는 땅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月來難見影 달은 떴지만 그림자를 볼 수 없고,
              風動未聞聲 바람은 불어도 그 소리는 들을 수 없구나.


           이 시를 받은 서산 대사가 화답한 시가 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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