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P. 77
입니다. 소나무 숲 아래에는 언제나 소슬한 그늘이 깔려 있어 지나가는 사
람을 감싸 줍니다. 무성한 소나무 숲은 인간을 자신의 가치에 합당하도록
납작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북지장사로 들어가지 않고 우측 바람고개 가는 길로 접어듭니다.
숲속 계곡으로 내려가서 한참 동안 휴식합니다. 언젠가는 더 이상 올라가
지 못하고 이 정도 계곡에서 만족해야 할 날이 오겠죠. 그때도 여전히 소
나무에서는 송진 냄새가 나고 개울물은 노래하며 흘러가겠죠.
바람고개 가는 길 입구에 부도탑이 하나 있습니다. 잠깐 올라가보니 한
경 대종사 부도탑입니다. 어떤 무덤이든 부도탑이든 그것은 모두 우리 자
신의 죽음을 가리키는 기호입니다. 조금 올라가니 가파른 산길이 나옵니
다. 이 길은 경사도 50도가 넘는 절벽 같은 길인데, 길옆으로 멧돼지 발자
국이 요란합니다. 최근에 지나간 멧돼지 발자국이라고 누가 말해줘서 알
았습니다. 갑자기 야생의 기운이 우리를 채찍처럼 휙 내리칩니다.
그냥 올라갈 수 없어서 안전 로프 밧줄을 설치해 놓았군요. 휴, 올라가
기 힘든 길이군요. 늘그막에도 산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경치를 보고 새로
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산행할 때는 귀찮더라도 스틱을 갖고 다녀야겠다
고 머릿속에 고딕체로 적어놓습니다.
한참 올라가자 커다랗고 칼로 잘라놓은 듯한 직사각형 바위들이 나타
납니다. 한눈에 봐도 바위의 기운이 범상치 않습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
합니다. “바위도 이 정도쯤 되면 부처님이 내려오실 만한 바위다.”
음,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인상적이고 많은 생
각을 불러일으키는 바위에 이름이 없을 리가 없겠죠? 바위 이름을 아는 사
람이 없어서 집에 와서 여러 모로 검색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한나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