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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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 무제(재위 502-549)가 달마 대사에게 물었다.
‘불교에서 가장 소중한 진리는 무엇인가?’
달마 대사가 답하였다.
‘모든 것은 휑하니 텅 비어 있어 진리라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내 앞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달마가 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2)
이 공안은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실상實相을 주제로 한 것입니다. 세상의
실상은 활짝 갠 푸른 하늘처럼 휑하니 텅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은 기
본적으로 일원론입니다. 한 존재는 전 존재와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합니
다. 공안을 읽어보면 선의 마음은 항상 현실 세계의 여러 현상 속에서 ‘일
즉전一卽全’이라는 전 존재의 본질을 터득하는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본질을 보는 마음은 광대무변 그 자체입니다. 그것이 ‘확연무성’입니다. ‘확
연무성’은 ‘무심無心’이기도 합니다. 실상은 머리의 기능 이전의 세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확연무성’은 양나라 무제가 좌뇌左腦로 묻는데 반해 달마는 우
뇌右腦로 대답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치판단을 하는 좌뇌를 제거하고
나면 거기에는 활짝 펼쳐진 푸른 하늘의 이미지만 남고, 성聖이니 속俗이
니 하는 개념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달마는 선입관 없이 대상
2) 『碧巖錄』, 第一則 「聖諦第一義」, “舉, 梁武帝問達摩大師: ‘如何是聖諦第一義?’ 摩云: ‘廓然無聖!’ 帝
曰: ‘對朕者誰?’ 摩云: ‘不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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