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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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김가진 선생이 쓴 천등산 봉정사 현액.

               그런데 유생들과 절과의 관계는 그렇게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다. 향교

             유생의 강습회인 도회都會의 유생들이 절에 오면 식사를 제공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봉정사는 ‘내원당內願堂은 잡역에서 면제되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유생들은 ‘왜 하지 않느냐?’ 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어
             급기야 봉정사와 광흥사廣興寺의 두 승려가 유생 장흡蔣洽 등을 폭행하여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에서 범죄 행위에 대

             해서는 책임을 묻되 유생들이 절에 갔을 때 음식을 준비하게 하는 것은 잡
             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하지 말도록 했다. 1565년 명종 20년 때 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일이 있은 그 다음해인 1566년에 퇴계 선생은 당시 사촌동생이 독

             서를 하며 묵고 있는 봉정사에 들렀는데, 봉정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층층
             의 기암으로 된 낙수대落水臺에 들러 아래의 시 두 수를 지었다. 낙수대는
             명옥대鳴玉臺로 이름을 바꾸었다.




                  此地經遊五十年  이곳에서 놀던 때가 어언 오십년
                  韶顔春醉百花前  젊은 시절은 흐드러진 꽃 맞으며 봄에 취했지
                  只今攜手人何處  손잡고 놀던 사람들 지금은 어디 갔느뇨

                  依舊蒼巖白水懸  변함없는 푸른 바위에 흰 폭포수만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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