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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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서 외교관 생활도 하
             는 등 여러 관직을 거쳤지
             만, 외세에 밀려 점점 기

             울어져 가는 조선을 보면

             서 독립협회의 창설을 주
             도하기도  하고,  일진회一
             進會 등 친일세력들을 규

             탄하기도 하는 등 우국충

             정에 몸부림을 치다가 일
             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
                                       사진 7. 대웅전의 마루와 난간.
             한 이후에는 대동단大同
             團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만세루 안에는 ‘만세루萬歲樓’와 ‘덕휘루德輝樓라고 쓴 2개의 현액이 결려
             있다. 만세루의 현액은 석능石能 김두한金斗漢이 쓴 것인데, ‘화엄강당華嚴
             講堂’과 ‘무량해회無量海會’의 편액도 그가 썼다. 덕휘루는 계축년(1913) 여름

             에 김가진 선생이 썼다(사진 5-1, 5-2). 만세루는 다른 사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불교적인 이름이지만, 덕휘루는 불교적인 이름이 아니다. 불교 사
             찰에서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이름의 현액이 붙은 것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 덕휘루도 그러한 경우이다. 여기서의  ‘덕휘’라는 말은 덕이 빛난다

             는 의미인데, 중국 전한前漢 시대 가의賈誼(B.C. 200-168)는 굴원屈原( B.C.

             340-278)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조굴원부弔屈原賦」 가운데 “봉황새가 천
             길 높이 날개를 치니 덕이 빛나는 곳을 보면 내리고, 덕이 없고 험한 징조

             를 보면 날개를 치며 멀리 날아가 버리는구나[鳳凰翔于千兮 覽德輝而下之 見
             細德之險微兮 遙增擊而去之].”라고 읊은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천하가 태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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