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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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이전 하대웅전 좌측 약사좌상(좌)과 현 하대웅전 동등신銅等身약사불좌상(우).



          란이 있던 유명한 작품이다. 영산(대)회란 석가모니가 깨달은 직후 대중들에
          게 처음으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후기 야외의식은 대부분

          영산회를 구현하는 법화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아무래도 야외의식에서

          클라이막스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생사生死 불문의 모든 중생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듣게 하고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장곡사 괘불의 화기에 의하면 ‘대웅전 앞에서 영산회를 열 때 내거는 괘

          불(長谷寺大雄殿庭中 靈山大會掛佛幀)’이라고 적고 있다. 당시의 야외의식은 영

          산재든 수륙재든 모두 영산회를 구현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극락
          왕생을 기원하는 소극적인 천도가 아닌 석가모니불에게 설법을 듣고 직접
          깨달을 수 있는 해탈의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축산의 설법이 이루어지는 장소 즉, 상단上壇이 차려지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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