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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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면한 법당 앞이 설
주說主의 자리가 되는 것이
다. 그래서 실제 법당 안에
어떤 부처님이 계시든 무조
건 그 순간만큼 그 건물은
영축산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조선 후기에
전각명과 주불의 불일치를
두고 단순한 혼란이라고 이
해하였는데, 장곡사의 예에
서와 같이 단순한 혼란이라
기보다는 야외의식을 중심
으로 운영되던 사찰에서 영
산회 설법의 장소를 구현하
사진 8.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기 위해 야외의식이 설행되
는 안마당에서 상단이 차려지는 건물은 어
떤 불상이 봉안되어 있든지 간에 대웅전이
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장곡사도 평소에는 약사
신앙으로 유명했지만 괘불을 펴는 날에는 약
사불이 두 분이나 봉안된 전각임에도 대웅전
이라는 편액을 걸었던 것인데, 그만큼 괘불
을 내거는 야외의식은 조선후기 우리나라 사 사진 9. 장곡사 괘불의 화기(정명희).
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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