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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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가 측정 때문에 달라져서는 안 된다. 이는 측정이 갖춰야 하는 기본 요
          건이다. 대상의 상태를 알려는 것이 측정인데, 측정으로 대상의 상태가 달
          라진다면 측정하는 의미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 잔고를 확인한다고 하자.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면, 잔

          고를 확인한다는 사실 때문에 잔고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수수료를 내더
          라도 수수료를 차감한 잔고가 얼마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래야 잔고를 확인하는 의의가 있다. 그런데 이게 양자의 세계에서는 성립

          하지 않는다. 왜인가? 측정 대상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전자와 컵의 위치를 측정하는 두 상황을 상상해 보자. 거시세계에서는
          컵에서 반사된 빛을 보고 컵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경우, 컵을
          본다고 해서 컵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는다. 컵은 아주 작은 광자와의 충돌

          로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시세계에서는 측정을 잘 하기만 하면, 측

          정 대상의 물리량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
          빛을 쪼인다면 상황이 전적으로 달라진다. 전자는 아주 가벼워서 광자와
          충돌하고도 그 위치가 변한다. 전자의 위치를 알려고 빛을 쪼였는데, 바로

          그 행위 때문에 전자는 다른 위치로 움직인다. 측정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측정 행위가 측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자구름과 양자암호     태양 주위를 행성이 공전하고,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돈다. 얼핏 보면 이 둘은 아주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행

          성과 달리 전자는 위치를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둘의 궤도는 전혀
          다르다. 왜 그런가? 수만 년 후에 행성의 위치가 어딘지를 아는 것은 아주
          큰 태양계 안에서도 언제나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관측 자료만 있으면 된

          다. 이와 달리 전자는 아주 작은 원자 안에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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