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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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불신이 초래하는 문제는 비단 종교생활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동체와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신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신은 사람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

          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신은 자신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의 결속을 깨뜨리고,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
          는 번뇌가 된다.
           둘째, 불신은 청정한 믿음을 가로막아[能障淨信] 게으름이 빌붙는 의지처

          가 된다는 점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믿음이 서

          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에 불신이 자리 잡으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게 되고,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세월만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불신이 깊을수록 실천의지가 꺾이고, 그런 마음에는 게으름만이

          자꾸 빌붙게 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불신은 “자성이 혼탁하고[自相渾濁], 심왕과 다른 심
          소를 혼탁하게 한다[渾濁餘心心所].”라고 했다. 불신은 스스로 확고한 믿음
          이 결여되어 의지가 명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심리작용까지 혼탁하

          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아주 더러운 물

          건[極穢物]이 자신도 더럽고 다른 것도 더럽게 하는 것과 같다[自穢穢他].”라
          고 비유했다. 냄새나는 오물이 그 자체로도 더럽지만 다른 것도 더럽게 만
          드는 것처럼 불신도 스스로는 물론 다른 마음 작용까지 부정적 영향으로

          오염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소법은 마음[心]에 종속된 것이지만 불신이라는 심소는 자신이
          속해 있는 마음 즉 심왕까지 오염시키는 성질[心穢爲性]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믿음이 없으면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사라지므로 근면이라는 심소를

          오염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불신의 역할이 이와 같기 때문에 불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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