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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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뿐이다. 파동이기 때문에 파동처럼 행동한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떤 맥
락에서 파동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인연으로 나타나고 마음으로 그린 세계 이게 미시세계에서만 일어
나는 일인가? 아니다. 사실은 거시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효과
가 작아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하거나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뿐
이다. 이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만들어 낸 개념
체계를 동원하여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은 인천에서 보면 동쪽에 있고 속초에서 보면 서쪽에 있다. 어디에
서 보는지가 관건일 뿐, 서울은 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니다. 서울은 동
쪽이나 서쪽이었던 적이 없다. 빛은 입자였던 적도 없고 파동이었던 적도
없다. 다만, 나에게 입자나 파동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입자나 파동이라는
것은 물리학이 만들어 낸, 궁극적으로는 우리 마음이 지어낸 개념이다. 그
개념을 빛과 전자에 뒤집어씌운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지만, 입자와 파동이라는 개념으로는 양자 한 알도 잡아
낼 수 없다. 박남수의 <새>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 보자.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총으로 새를 잡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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