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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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다 한용운 스님이 저술한 『채근담 강의菜根譚講義』를 보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이 있는데
종이나 먹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다.
펼치면 한 글자도 없는데
항상 큰 광명을 놓는다.
我有一卷經하니 不因紙墨成이라
展開無一字호대 常放大光明이라. 4)
이 글을 보니 무척 호기심이 났습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종이에 그려
놓은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 진정 내 마음 가운데 상방
대광명常放大光明하는 그런 경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글자
하나 없는 이 경을 읽을 수 있을까?” 하고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 뒤에
항상 큰 광명을 놓는 경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을 찾아본다고 참선을 익
히면서 스님이 된 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만, 그저 허송세월만 하고 말
았습니다.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의 덕상을 가졌다는 이 글자 없는 경, 말하
자면 자아경自我經, 곧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경을 분명히 읽을 줄 알아야
3) 한용운韓龍雲(879-1944):우리나라의 승려·시인·독립운동가이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 법
호는 만해萬海, 법명은 용운龍雲이다. 3·1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참가하여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에도 앞장섰다. 민족의 현실과 이상에 대해 노래한 『님의 침묵』으로 저항문학에도 앞장섰다. 저서로
는 『조선불교유신론』과 시집 『님의 침묵』 등이 있다.
4) 만해스님의 『정선강의精選講義 채근담菜根譚』 ‘개론槪論’편 제30에 “사람마다 마음속에 참 문장이 있지만
옛사람의 하찮은 말에 모두 막혀 버리고, 사람마다 마음속에 참 풍류가 있지만 세상의 난잡한 가무에
모두 묻혀 버린다. 배우는 사람은 하찮은 외물을 쓸어버리고 본래의 마음을 찾을 때 참된 수용이 있으
리라.[人心有一部眞文章, 都被殘編斷簡封錮了. 有一部眞鼓吹, 都被妖歌艶舞沒湮了. 學者須掃除外物, 直覓本來, 纔有個眞受
用.]”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만해스님이 강의한 내용 중에 이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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