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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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둔사지』의 편찬
                                                 에는 왜란과 호란 이후 지
                                                 속적으로 전개된 불교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격상

                                                 과 변화, 성리학을 중심으
                                                 로 한 당시 사상계의 변화
                                                 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배

                                                 경이 내재되어 있었다. 성

          사진 2. 『대둔사지』 권1의 앞부분.                  리학은 조선 후기에 그 인
                                                 식이 더욱 심화되고, 조선
          사상계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조선왕조의 체제와 그 사회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지속적으로 담당했다. 그러나 18세기를 전후한 조

          선 성리학계는 조선 후기 사회의 각 방면에 걸친 변화로 정통론正統論과 명
          분론을 강화시키고, 성리학적 가치관을 사회에 확산시키려는 보수사상으
          로 전락하여 전체적인 변화상에 대응하고자 했다.

           성리학계의 이러한 체제 유지를 위한 변화는 성리학에 대한 비판 의식

          을 태동시키고 성숙시켰다. 즉 성리학이 당시의 사상계에서 차지하고 있
          던 지도적 위치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시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도가철
          학道家哲學의 연구와 중종대中宗代 이후 진행된 주자학의 심학화心學化 과정

          에서 형성된 양명학 수용 또한 성리학과 대등한 입장에 서거나 그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성리학 체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
          었던 것이다.
           또한 17세기 이래 근기近畿 남인南人들의 선진유학先秦儒學 연구에서 비롯

          된 실학사상은 당시의 역사적 모순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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