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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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자는 의지를 표
명하였고, 그 방안으로 참선, 교육, 법식(의
례)의 정비라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48호부터는 문예, 학술 등을 포괄하는 고급
학술잡지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방침에 따라
지면을 구성하였다.
만해가 제작에 참여한 첫 호인 84·85호
에는 『불교』지의 새로운 편집 방향이 명시되
사진 3. 만해의 권두시 <환가>(84·85호). 지 않았다. 다만 “불교를 읽는 것은 수양과 지
식을 아울러 얻는 것이오.”(84·85호)(사진 3)
라는 문구는 수양과 지식을 전하는 매체로
서 『불교』지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해는 이후 국내외 종교 소식을 다양하
게 전달하는 지면을 마련하였다. 84·85호
~87호(1931.9)에는 만해 이름으로 「만화漫
話」란을, 88호(1931.10)부터 99호(1932.9)까지
는 ‘만인萬人’이란 호로 「한갈등閑葛藤」란을
마련하여 러시아, 중국, 아메리카, 멕시코,
사진 4. 해외종교소식(「한갈등」, 89호).
일본, 이탈리아,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태
리 등의 다양한 해외 불교 소식을 소개하였다(사진4). 만해는 특히 서구의
반종교운동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는데, 이는 시대 상황과 해외 불교계에 대
한 그의 관심이 직접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기획과 함께 「불교
시단」과 「독자문단」을 신설하여 다수의 시 작품을 게재하였고, 그 결과 다
수의 불교청년, 문학청년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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