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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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에 한글 경판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중략) 나는 그
말을 들은 뒤에 나의 일생에 많이 받아본 기억이었는 정도의 충동
을 받았다. 그리하여 듣던 그 이튿날 (중략) 한글 경판의 정리를 시
작하였는데 모든 경판 약 이천 판이 뒤섞여 있는 중에서 종류와 순
서를 찾아서 정리하기에는 여간 곤란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나
의 손이 경판에 접촉될 때마다 강반의 감개를 석긴 기쁜 마음을 움
직이게 되었으며, 동시에 일판 이판 순서를 찾아 정리할 때에 만일
낙질이 되었으면 어찌하나 하는 염려로 마음은 긴장에 긴장을 거듭
하였다. (「국보적 한글 경판의 발견 경로」, 불교 87호, 1931.9. 표기 일부 수정)
한글 경판으로 『월인천강지곡』 4권의 판목만 전해지던 당시에, 다량의
경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안심사로 달려가 확인하고 감격하는 만
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후 직접 내려가 판목을 정리하여, 『원
각경』, 『금강경』, 『은중경』, 『천자千字』, 『유합類合』 등 경판 662판 중 7판이
누락된 658판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를 불교계와 조선학계의 경사이며
“한글 경판은 모든 의의에 있어서 조선의 국보적 가치를 가진 것이다.”라
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를 수호할 방안으로 세 가지 방안을 모색한 결과
경성에 이안하여 일반 대중에게 편의를 주는 방안을 실행하고자 한다고 소
개하였다.
93호(1932.2)~95호(1932.5)에는 한글 경판 인출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광고문 가운데는 “조선 문화의 경이적 백미白眉”, “국보적 한
글 경판의 인출”, “학계 각 방면의 충동여하衝動如何”라는 강렬한 문구가 사
용되었다(사진 6). 「한글경 인출을 마치고」(103호, (1933.1)에서는 『원각경』,『은
중경』,『금강경』 판목 가운데 훼손된 판본을 직접 수리하여 보완하느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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