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P. 67
국보급 한글 경판을 발굴, 인출印出하다
1920, 30년대에 불교계는 『불교』지를 통
해 한글 경판(언해 불서)을 발굴, 소개하는 기
사를 수록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먼
저 권상로 편집 시기에는 권상로(「오대산에
유진留鎭한 어첩御牒에 대하야」, 59호), 최남선
(「영인 대산어첩서臺山御牒敍」, 59호), 김태흡(「세
종대왕의 신불과 월인천강곡」, 69호) 등이 투고하
였는데, 이들 자료는 당시 대학이나 전문
학술잡지가 없는 현실에서 세종이 창제한 사진 5. 한글 경전 발굴 기사(87호).
훈민정음 자료를 발굴, 소개하는 의의가 있
다. 만해 역시 발행인으로서 『불교』지에 새로 발굴한 보물급 언해(한글) 불
서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학계와 문화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국보적 한글 경판의 발견 경로」(87호, 1931.9)(사진 5)에서 발굴의 과
정을 소개하였고, 이후 국보급 자료를 영인하여 학계에 제공하였으며, 최
종 보고서로 「한글경 인출을 마치고」(103호, 1933.1)를 수록하였다.
다음 글은 만해가 1931년에 전주 안심사에 한글 경판이 소장되어 있다
는 제보를 받고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650여 판의 서지 정보를 확인한 후
받은 놀라움을 기사화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존재를 인식하던 것이 산질된 월인천강곡 4권의 판이
있을 뿐이오, 그 밖에는 실로 요요무문寥廖無聞 그 형영形影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약 십여 일 전에 김종래 씨와 한상운 씨로부터 전주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