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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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1932.6) 「사고社告」에서 “본지로 하여
             금 독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제1보”로서
             「독자시조단」을  신설할  것을  예고하였고,

             97호(1932.7)~99호(1932.9)에  걸쳐  「독자시

             조단」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수록된
             작가가 기존에 「불교시단」에 투고한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양자는

             100호부터는 구분 없이 「불교시단」으로 흡

             수되었다.                                    사진 7. 「불교시단」(101호).
               독자들과  소통하여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은  「독자시조단」에  이어  「독자논단」의  신설로  이어졌고,  106호

             (1933.4)부터 종간호까지 「독자문단」이 배치되었다. 105호(1933.3)의 「사

             고」에는 「독자문단」을 창설하면서 ‘논문, 기행문, 문예, 기타’의 글을 공모
             하였다(사진 7).
               이후의 양상을 보면 87호(1931.9)부터 편제된 「불교시단」이 종간호까지

             명맥을 유지한 가운데 특히 100호(1932.10) 기념호에 폭발적으로 시의 분량

             이 많아졌고 그 이후에도 100호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수록되는 경향
             이 있다.
               87호 이후 종간호까지 「불교시단」에 1회 이상 투고한 시인은 47명이다.

             빈도순으로는 조종현(조탄향 포함, 19회 32수), 김태흡(8회 8수), 김일엽(7회 14

             수), 나방우(7회 8수), 윤한성(7회 7수), 김어수(6회 11수) 등이다.
               만해는 『불교』지를 통해 강원 및 중앙불전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많
             은 문학청년에게 지면을 제공함으로써 근대 불교 문학장의 확장에 기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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