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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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의 판각에
최우의 수복을 기원하
는 발원이 담겨 있다.
1236년에 판각된
『묘법연화경』의 발문
은 정안鄭晏(?~1251)이
썼다. 정안은 하동 정
씨로 3대에 걸쳐 고위
사진 4. 『묘법연화경』 정안 발문.
관료를 배출한 집안
출신으로 최우와는 처남 매부 간이었다. 희종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하였다. 부친 정숙첨이 1217년경 고향인 하동으로 유배를 가자 그
도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후 20여 년간 하동에서 주로 활
동했다. 그는 산인山人 명각明覺에게 판각과 인행을 요청했으며, 진양후 최
우가 오래도록 가문과 국가에 주석柱石이 되고, 영원토록 불법의 수호자[번
장藩墻]가 되기를 기원하였다(사진 4). 1247년 본격적인 대장경 판각에 앞서
최우를 선양하기 위한 불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이 책판도 해인사
사간판전에 남아 있다. 한 판에 42행 16자의 권자본 형식으로 판각되어 있
으나, 백련암에 소장된 동일한 2질의 『묘법연화경』 인출본은 11행 혹은 10
행씩 접은 선장본으로 제책되어 있다.
『선문염송』과 『종경록』
정안은 1241년 국자감 제주祭酒로 다시 관직에 나갔으나 최우가 전횡을
일삼는 것을 보고 1243년경에 다시 남해로 물러났다. 그해 음력 8월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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