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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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종경록』 권수제면과 표지.
는 혜심을 신뢰하여 후원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을 그의
문하에 출가시키기까지 하였다. 혜심이 입적하고 난 뒤 『선문염송집』을 국
가기관이었던 분사도감에서 판각했던 것은 그 만큼 혜심의 권위를 세우려
는 입장이 엿보인다. 조선이 건국되고 『선문염송집』이 국가에서 시행했던
승과 과목으로 선정되었던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경록』은 영명연수永明延壽(904~975) 선사가 대승경전 60부와 300여
명에 이르는 인도와 중국의 고승들의 가르침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100권으로 엮은 책이다. 1246년부터 1248년까지 3년에 걸쳐 남해 분사대
장도감에서 판각되었다. 『종경록』의 판 형식은 재조대장경판과 같았으며,
각 권의 권수제와 권차 아래에 녹祿·치侈·부富·거車·가駕·비肥·
경輕·책策·공功·무茂의 10개 함차가 새겨져 있다(사진 6).
그런데 이 함차는 재조대장경에 입장된 『신집장경음의수함록新集藏經音
義隨函錄』(권19~30), 『어제연화심윤회문게송御製蓮華心輪廻文偈頌』(25권), 『어
제비장전御製秘藏詮』(30권), 『어제소요영御製逍遙詠』(11권), 『어제연식御製緣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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