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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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御
                                               筆閣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
                                               는데, 어필을 보관하던 공간

                                               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었던것

                                               같다. 안동의 광흥사廣興寺와
                                               같이 조선시대 사찰에 어필을
                                               보관하는 어필각이 있는 경우

                                               가 있다. 원래의 극락전은 신

                                               라 경순왕敬順王(927~935)이
                                               피난할  때  원당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진 7. 봉암사 극락전.


            지증대사와 정진대사


           봉암사를 지증대사가 창건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만, 과연 그가

          선문禪門으로서 희양산문을 개창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분

          분하다. 봉암사가 설립된 후 희양산문을 개창한 이는 봉암사에 들어가 선
          풍을 크게 일으킨 정진대사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이는 봉암사
          경내에 서 있는 「지증대사탑비智證大師塔碑」와 「정진대사탑비靜眞大師塔碑」의

          내용에서 다소간의 차이가 있어 생겨난 문제이다.

           「지증대사탑비」에 의하면, 도헌국사는 어려서부터 부석산浮石山에 가서
          교학敎學인 화엄공부를 한 다음에 출가하여 17세에 구족계를 받고 혜은慧
          隱 대화상에게 나아가 선禪을 배워 그 법을 이었다. 그리고 스승인 혜은화

          상은 준범遵範 화상으로부터, 준범화상은 신행愼行(神行, 信行, 704~77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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