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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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7호 | 근대불교사서 史書 15 | 조선후기 불교계의 사지寺誌 찬술
『대둔사지』의 찬술자와 정약용③
에서 정약용(1762~1836)의 존재는 빼
놓을 수 없다. 그가 1801년 ‘황사영백
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의 여파로 전라
고성사에 초암을 짓고 도 강진康津에서 18년 동안의 유배생
혜장선사와 교류하다 활을 한 것은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의 사상과
오경후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역사, 그리고 문학 등을 통해 조선후
기 불교계 지성知性들이 출현했으며,
불교계의 문예수준이 향상된 것이
다. 이것은 조선의 불교가 동시대에
유행했던 문예사조와 만날 수 있었
고, 그 의식수준이 향상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불
교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다산의 불교관련 시문과
불교관
오경후 동국대 및 동 대학원 사학과에
서 공부하고 「조선후기 사지寺誌편찬과
승전僧傳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저서 정약용은 『만덕사지萬德寺志』 찬술
로 『조선후기 불교동향사』, 『사지와 승
전을 통해 본 조선후기 불교사학사』, 『한 에서 전체 내용을 감정鑑定한 것과는
국근대불교사론』, 『석전영호 대종사』(공 달리 『대둔사지』에서는 권1의 단 한
저), 『신흥사』(공저) 등이 있다. 현재 동국
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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