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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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전남 강진군의 고성사高聲寺. 정약용은 이곳에 보은산방報恩山房이라는 초막을 짓고 머물며 혜장惠
藏(1772~1811) 스님과 교우했다. 사진 강진군.
문모周文謨의 입국과 1801년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 간
이후부터다. 다산은 1801년 겨울 강진에 도착해서 동문 밖 주가酒家에 거
처했고, 1805년 겨울에는 보은산방寶恩山房(高聲寺)으로 옮겼다.
1806년 가을에는 이학래李鶴來의 집으로 옮겼고, 1808년 봄에는 만덕산
기슭의 윤부尹博의 산정山亭인 ‘다산茶山’으로 옮겨 10여 년 동안을 살았다.
이 시기 동안 다산은 만덕사와 대둔사 스님들과 교류를 통하여 불교와의
깊은 관계를 갖는다.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그는 부분적이나마 개인의 불
우한 환경을 불교에 의지하였으며, 불교경전을 섭렵하기도 하고, 스님들
에게 시와 유학을 가르쳤다.
그의 이러한 스님들과의 교유는 『만덕사지』·『대둔사지』·『만일암지挽一
菴志』 등 대둔사와 만덕사를 비롯한 사암寺庵의 역사를 편찬하는 작업에서
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대둔사지』는 다산과 사제지간의 교연交緣을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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