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P. 128
은 만덕사와 대둔사의 스님이 중심이 되어 찬술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스
님 개인의 행적과 문집에서는 이들이 『대둔사지』 편찬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고대사나 불교사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둔사지』는 그 내용이 당시 일반사서의 그것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대
둔사와 관련 깊은 고대사와 불교사에 대한 정리는 대부분 아암과 색성·
초의·자홍이 주도했다. 특히 대둔사의 연혁에 대한 이전 자료의 비판과
고증은 연대 오류나 그에 따른 삼국의 형세, 그리고 고대 대둔사의 창건과
중건에 대한 검토가 매우 치밀하게 진행된 것이다.
스님들의 이러한 자료수집과 이전 자료에 대한 비판과 고증은 스승 정
약용이 영향을 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스님들은 시와 유교 경전 등의 수학
과 함께 전란 이후 자기 인식이 강렬하게 부각되었던 조선의 역사에 대한
이해까지도 전수받은 것이다. 결국 정약용은 제자들에게 사지 편찬에 이
용할 자료를 수집하게 하고, 그 비판과 고증을 실시케 하여 주註 또는 안
설案說을 덧붙이게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둔사지』는 정
약용에게서 학문적인 영향을 받은 완호와 아암을 필두로 하는 스님들 즉
다산학파茶山學派의 역사연구에 대한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둔사지』의 찬자와 찬술 시기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서지학적 측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둔사지』는 우리나라 불교 사지의 정형이라는 평가
를 받고 있고, 조선후기 일반 역사서의 찬술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찬자와 시기 문제는 찬술의 과정에서 보이는 다산의 기여도와 편
사編史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현재 『대둔사지』는 찬술자와 찬술시기가 확실치 않다. 특히 권4 『대동선
교고』는 찬술자가 다산이라는 근거가 미약하여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