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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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큰스님의 세수도 일흔에 가까워지니 조계종 현실에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을 굳히신 듯합니다. 당시 종단과 학계
             는 정화불사를 성취한 후 보조국사를 조계종 종조로 모셔야 한다는 문제로 들

             썩이고 있었는데, 해인총림 방장으로서 백일법문과 같은 법문은 다시 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그래서 1976년 7월 『한국불교의 법맥』을 저술하여
             태고보우국사를 조계종 종조로 모셔야 한다는 취지로 발표하셨습니다. 그리
             고 1967년 12월 백일법문을 설법한 지 15년의 세월이 지나서 선종 부분만 선

             택하여 다시 정리하기로 작정하신 듯합니다. 【사진 5】

               『백일법문』에서는 하권 ‘제2장 4절 오매일여’를 다루는 끝부분에서 『종경
             록宗鏡錄』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딱 두 구절만 인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선
             문정로』는 제1장 ‘견성성불’에서부터 영명연수의 『종경록』 제1장 ‘표종장’을 인

             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철 방장스님은 지난 세월에 걸

             쳐 『종경록』을 저본으로 하여 선과 교를 다시 살펴보시고 선의 수행과 실천에
             있어서 『백일법문』의 선 강의와는 차원이 다른 격조 높은 저술, 즉 선의 고전
             이 탄생하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원고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법정스님에게 윤문의 도움을 받으며

             편집과 교정 작업을 하는 중에 전두환 군부 독재의 10·27 법란이 일어나 조
             계종은 미증유의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종단 사태 가운데서
             1981년 1월 15일에 성철 방장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장에 추대되셨

             고, 『선문정로』는 그해 12월에 출판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학자

             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철스님은 『선문정로』를 집필하시면서 무려 88종
             에 달하는 경론과 어록을 참고하시고, 그중에서 326개에 달하는 내용을 인용
             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스님께서 『선문정로』를 집필하기 위해 얼마

             나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선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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