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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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출현하여 성철 방장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을 연구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라는 뜻을 가슴 한구석에 품었던 사실이 떠올랐고, 또 그것이 동인動因이 되
어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의 설립에 성심誠心를 다한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갔
습니다. 이제야 제 오래된 바람이 이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진 3】
세월이 흘러 2021년 4월 24일 성철사상연구원 주최로 열린 학술연찬회에
서 강경구 교수는 「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기조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강 교수는 발표를 마치고 떠나시면서 “스님! 이제 『선
문정로』 연구를 다 마쳐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기다리셨지요. 곧 소식
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6월 중순쯤
장경각으로 원고를 보냈다는 연락을 주시며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출판해 주
시고 아니면 그냥 돌려보내셔도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며칠이 지나 A4용지 500여 쪽에 이르는 묵직한 원고 책이 제 손에 들어왔
습니다. 지난날 보조국사의 돈오점수를 주장하며 분기탱천하여 성철스님의
돈오돈수 논지를 거세게 몰아붙이던 보조국사 1세대 학자들의 모습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습니다. 일반 단행본으로 펴내면 1천여 쪽이 넘을 거라는 말도 무
색하게 일주일여 만에 독파하고 나니, 10여 년 동안 『선문정로』를 연구해 오
신 강경구 교수의 신심과 노력에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단순한 호기심과 연구만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작업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성철스님 이론을 믿고 따라가 보자는 굳건한 신심과 저
자 자신의 실경계 체험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대단한 작업이었
습니다. 성철스님에 대한 긍정이나 비판 등의 발언은 뒤로하고 객관적인 입
장에서 짚어나가는 성실함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습니다. “아! 이제야 큰스님
께서 부처님께 밥값하셨다고 자처하신 『선문정로』에 도달할 수 있는 단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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