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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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의 출간은 침몰해 가던 조계종이라는 난파선을 구해낸 크고 큰일이 아니
          었나 생각합니다.
           『선문정로』는 깨달음[實悟]과 수행[實參]에 관한 문제를 여러 경전과 어록에

          서 발췌하고 정리하여 고구정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불조佛祖와 달마정전達

          摩正傳의 정통은 돈오점수가 아닌 돈오돈수라는 내용으로 수미일관하고 있습
          니다. 그러다 보니 750여 년 동안 돈오점수를 선종의 전통 수행으로 여기고
          보조국사를 숭모해 온 불교 문중과 불교학계의 충격과 분노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조지눌 국사는 황제께서 인정하신 고승인데 가야산

          깊은 산중에 있는 해인사 방장스님이 보조국사의 사상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서 종정이 되었다고 맥락 없이 보조국사를 힐난한다.”라고 하면서 보조지눌
          을 숭모하는 분들은 분을 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문정로』가 출간되고 간헐적으로 돈점논쟁 학술회의가 있어 오다가 10여

          년이 지난 뒤인 1990년 보조사상연구원 주최로 송광사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뒤이어 1993년 10월 백련불교문화재단 주최로 해인사에서 국제
          학술회의가 열리면서 국내외에서 3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후

          10여 년간의 돈점논쟁은 불교학계의 큰 이슈가 되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성철스님께서 1993년 11월 4일에 홀연히 입적하시고 보조국사의
          사상을 연구하던 1세대 학자분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면서 돈점논쟁을
          주제로 하는 학술회의도 점점 사그러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불교학계에 토론 열기가 활발하던 때도 없었

          던 듯합니다. 그 후에 어쩌다 당시에 힘차게 논쟁에 참여하셨던 학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반가운 눈빛으로 “그때는 성철스님 덕분에 돈점논쟁으로 활기가
          넘쳤죠. 어쩌면 그때 학자 몫을 다한 듯싶어서 오히려 그립기도 합니다.”라는

          말씀을 넌지시 하시곤 했습니다. 【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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