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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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가 놓여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날 성철 종정 예하께 제대
          로 도움이 되지 못한 시봉侍奉이 아쉽고 아쉬웠습니다. 성철스님의 상좌로서
          50여 년을 살아온 덕에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서도 받고 머잖아 이 원

          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열반 30주년 즈음에 큰스님께 봉정할 날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 4】
           그런데 가슴속에 한 가지 의문점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큰스님께서
          는 1967년에 백일법문을 통해 선과 교를 아울러 설파하셨는데, 어째서 십여

          년이 훨씬 지나 『선문정로』를 출간하셨을까?’ 하는 망상이 머릿속을 꽉 채웠

          습니다. 화두에 몰두하듯이 며칠 동안 의문에 의문을 달다 보니 서서히 그 안
          개가 걷히는 듯하였습니다.
           1967년 7월 23일, 해인사에서는 종단의 중대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청담

          종정 예하의 소집으로 70여 명의 스님들이 모인 ‘종단 중진회의’가 열렸습니

          다. 이때 성철스님도 참가하였습니다(당시 56세). 성철스님은 도반이신 자운 큰
          스님의 요청으로 1966년 가을에 문경 김용사 조실로 계시다가 백련암으로 옮
          기신 지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중진회의는 25일 정오까지

          이어져 자연스럽게 제16회 임시중앙종회 본 회의로 연결되었습니다. 이 회의

          에서 해인사에 방장 체제의 해인총림 설치가 결의되었고, 해인총림 초대 방
          장에 성철스님이 추대되었습니다. 11월 16일(음 10월 15일)에 해인총림이 설치
          되었고, 첫 번째 동안거를 맞이하여 선원에 60명, 강원에 70여 명 그리고 큰

          절의 각 소임 등 약 160여 명이 동안거에 들어갔습니다.

           성철스님께서는 동안거 결제법문을 하고 음력 10월 말일에 상당법문을 하
          신 후에 12월 4일부터 이듬해 2월 18일까지 1백여 일 가깝게 ‘특별법문 청법
          대법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른바 세간에 유명하게 언급되는 ‘백일법문’이 탄

          생하게 된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학계에서도 드물게 불교의 선禪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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